박천응 목사 칼럼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과 신 이주민 3세대
박천응 목사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대부분은 모두가 이주민이다.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에는 이주민 3대가 살고 있다. 1986년 안산시 승격 이후 신이주민 3대가 살고 있다. 안산 토박이 출신들인 1세대, 직장을 따라 안산으로 이사와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2세대, 그리고 국적 회복 중국 동포를 포함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몰려와 이주민으로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3세대가 어울려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국경없는 마을에는 외국인이 없다 모두가 이웃이다.
1. 안산의 명칭과 이주민 같은 원주민
안산은 고구려시대에는 장항구현(獐項口縣) 또는 고사야홀차현(古斯也忽次縣)으로 불렸다. 신라 진덕왕 때는 장구현, 신문왕 때는 장구군(獐口郡)으로 승격되었다. 안산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처음으로 안산현(安山縣)으로 불렸다. 충렬왕 34년(1308)에 덕종, 정종, 문종이 탄생한 명예로운 고을이라 하여 안산군(安山郡)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 13년(1413) 전면적인 지방통치 조직의 개편이 있었고, 그 일환으로 실시된 8도제의 시행에 따라 경기도에 예속, 안산군으로 되어 이후 군수가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고종 32년(1895)에 인천부(仁川府)에 딸린 한 군이 되었고, 다음해에 경기도의 4등군(4等郡)이 되었다. 1914년에 시흥, 과천, 안산의 3개 군이 시흥군(始興郡)이란 명칭으로 통합되면서 안산이란 이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후 1976년 시흥군의 수암면, 군자면과 화성군의 반월면 일부가 반월신공업도시(半月新工業都市)로 조성되어지면서 해마다 인구가 증가되었으며 이때의 지명은 반월이었다. 1986년 1월 1일 시 승격과 함께 안산이라는 명칭의 뿌리를 찾아 안산시로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안산은 변방지역으로 취급 받았으며, 안산에 사는 원주민들도 통치 관할이 자주 변경 되면서 자신들의 소속도 자주 이주되면서 살아 온 것이다. 안산의 상징인 광덕산의 경우 조선시대까지 쓸모없는 산, 서울을 배반한 산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즉 안산은 한양을 배반하여 발전하지 못하는 땅‘으로 주류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지역이다. 그러나 광덕산은 100미터도 안 되는 변방의 버림 받은 산(95m)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신 안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감추어진 보물과 같은 다문화의 중심지가 되어가고 있다.
2. 이주민 1세대로서 이주단지 주민
1) 원곡동의 조성
안산에 이주민 1세대는 반월 신도시 조성부터이다. 1964년부터 수도권인구집중 인구 억제 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976년 7월 21일 대통령의 지시로 반월 신도시로 조성되게 되었다. 반월 신도시는 1977년부터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완료 연도인 1986년까지 개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개발 방식은 신도시 건설을 위한 토지를 전면 매수하여 개발하는 방식 이었다. 정부는 원주민들에 대하여 이주단지를 먼저 조성하고 주민들을 이주 시킨 후 개발 사업에 착수하는 방식을 채택 하였다. 원주민들이 이주할 이주 지역은 7개의 지구로 선정 되었다. 1986년 5월까지 43차에 걸쳐 총 2,398가구의 이주가 이루어졌다. 기존에 농사를 짓던 이주민 1세대 중 가장 큰 변화는 직업의 변화였다. 전체 원주민 출신의 이주민의 3/4이 직업을 바꾸었다. 이들의 직업은 농업에서 단순 노무나 실업상태로 전환되었다.
2) 이주민1세대 삶터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
안산시로 승격되기 전 부터 이주민 단지로 불렀던 원곡동(元谷洞)의 명칭은 1914년부터이다. 이전에는 안산군 와리면 원상리(瓦里面 元上里 와(瓦): 기와, 질그릇, 실패, 실을 감는 물건) 혹은 모곡리(茅谷里, 모(茅): 띠를 베다, 띠로 이은 집)라 불렸다. 1986년 시로 승격되면서 원곡동으로 불렸는데, 원곡동에는 뗏골(茅谷), 동산골(東山谷), 백성말(百姓洞), 신흥동(新興洞), 양지마을(陽谷), 오지미(奧地山) 등의 취락이 있었다. 원곡동의 명칭은 원상리(양지마을)의 원과 모곡리(뗏골)의 곡자를 취한 것이다.
1988년 10월 25일 개통한 안산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원곡동의 옛 명칭은 신흥동(新興洞: 새롭게 일어남)과 양지마을(陽谷), 뗏골(茅谷)이 합쳐져 이루어진 곳이다. 안산역이 세워지기전에는 1937년 개통한 수원-남인천간(52km) 협괘 열차가 있었으며(1995년 12월 1일 폐선) 신길동 지역에 원곡역이 있었다. 국경없는 마을을 이루는 원곡동의 신흥동은 안산전철역 인근지역이고, 양지마을은 라성호텔과 원곡1동 사무소 지역이다. 중소기업연수원 쪽 지역을 아랫말, 원곡 1동 사무소 지역을 ‘웃말’이라 하였다. 양지마을 지역은 명당이라 묘지가 많았다. 원곡고등학교와 현충탑 인근 지역은 시흥군 당시 원곡리 공동묘지 지역이었다. 안산시로 승격되기 전 자치단체에서 양상동 지역(산50-2)에 화장장을 걸립하려하자 1984년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 되었다. 양지마을에선 음력 8월15일이면 웃말과 아랫 말이 모여 대동우물에서 정제(井祭)를 지냈다. 원곡동 내에 있는 뗏골은 예로부터 피난골이라 하여 전쟁이 나면 화를 면한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 원곡동은 신도시 개발 이후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1986년 5월 기준 이주 대책에 의해 자신이 살던 곳을 이주한 이주민 2,398가구 중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의 이주민 1세대의 경우는 군자1단지 844가구, 군자 2단지 142가구 총 986가구가 이주민 1세대인 셈이다.
3. 이주민 2세대로서 국내 노동자
1) 반월 공단 집중 주거 지역으로서 원곡동
안산시는 수도권의 공업 분담을 위한 계획도시로, 반월. 시화 2개의 국가 산업단지와과 1개의지방 산업단지(반월도금단지)가있다 조립 금속, 정밀화학 자동차 기계부품 전자 전기 부품 등이 주요 업종이며 관련업체 1만1000여개가 밀집되어있다 조립금속이 21.5%를 차지하고 있고 기계장비 화학섬유 공업 등의 순이다. 이들 대부분의 업체들은 자동차 부품과 관련 된 업체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자연히 대부분의 공장들도 자동차 부품, 염색, 도금, 가죽 등 3D 업체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986년 원곡동의 이주가 완료 되고부터 신 이주민 2세대로서 공단 한국이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물론 1980년부터 공단 조성과 함께 구로 등지의 노동자들이 원곡동으로 이주 하였다. 그러나 이주민 2세대들로서 공단 노동자들의 완전한 자리 매김은 1986년 이후로 보면 좋을 듯하다.
2) 반월 공단 노동자들의 휴식처이자 노동자들의 중심지
원곡동이 노동자 밀집 지역이 된 것은 반월 시화공단으로 이어지는 버스와 전찰 등 교통수단이 이곳을 지난다. 교통수단이 용이한 이곳이 노동자들의 집단 주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원곡동에는 뗏골 인근에 공단 기숙사 단지가 들어서 있고, 안산역 맞은편에는 공단 납품 부속 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원곡동 이곳은 1986년 6월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이곳 안산에서도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의 요구가 전국적으로 급격히 분출 되었다. 이때 한국인 노동자들도 안산역과 원곡동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 하던 곳이다. 1990년대 원곡동 일대에는 노동관련 한국인 단체들이 집중 되어있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있을 때 원곡동의 노동단체를 찾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퇴근시 원곡동을 들러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의 피곤함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래서 1990년까지만 해도 원곡동과 라성호텔 인근은 안산의 사실상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러나 한국인 노동자들도 IMF를 맞으면서 서서히 이동에를 떠나게 되었다.
4. 이주민 3세대로서 이주노동자
1) 3세대 등장 시 공단 현황
이주민 3세대가 등장할 무렵인 1993년 안산지역의 공단현황은 다음과 같다. 기계장비제조업 510개소, 화학, 고무업종 209개소, 섬유, 의복, 가죽, 제조업 161개소 등 총 1,069개소의 중소기업이 입주해 있다. 종업원 규모는 9만 6000명에 이른다. 반월공단의 2007년 조합수 는 130개이고, 조합원 수 14,403명(남 12,292, 여 2,111)이다. 2008년 말 기준 안산시의 전체 인구는 741,073명이고, 이중 외국인 수는 32,816명이다.
이주민 3세대로서 이주노동자들의 등장은 1990년 이후이다. 특히 원곡동에 이주노동자들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IMF 때 한국인 노동자들이 실직을 이유로 이곳 원곡동을 떠나면서 이 마을은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다. 오히려 티켓 다방 등이 성행 하면서 마을이 슬럼화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인이 마을을 떠나고 빈방들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이주민들이 빈방을 하나 둘씩 차지하면서 원곡동이 이주민 밀집 지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3세대 이주민으로서 이주노동자
국경없는 마을의 이주민은 원곡동의 절반을 차지한다. 원곡동의 이주민은 구체적으로 1990년 대 이후부터 원곡동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7년 IMF를 거치면서 이주민들이 원곡동에 주거인으로 자리 잡아 나갔다. 현재 원곡 본동의 전체 인구수는 37,600 명(남 20,994, 여 16,606) 11,741세대이다. 이중 한국인은 22,290 명(남 12,640, 여 9,650), 외국인은 15,310 명(남 8,354, 여 6,956)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경우 신길동 아파트 지역을 원곡 본동에서 분리할 경우 사실 국경없는 마을에서 거주하는 등록 내국인과 이주민의 비중은 각각 50%로 보면 된다. 원곡동의 내국인들의 연령을 보면 19세 이하 아동 청소년층에서 4,179명, 65세 이상에서 1,796명으로서 총 5,975명이고 생산 활동이 가능한 나머지는 인구는 16,315명 정도이다. 이주민의 경우 대부분이 생상 활동을 하는 연령대이다. 그러나 이주민의 경우 거주자로 등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록자 수만큼 되기 때문에 원곡동에서의 이주민의 비중은 더 높다고 추정 된다.
3) 국경없는 마을 운동의 시작
국경없는 마을 운동은 이주민 3세대인 이주노동자들이 원곡에 자리 잡아 나가면서이다. 국경없는 마을은 1999년부터 본격화 되었다. 국경없는 마을은 1994년-1999년 준비기, 1999년-2002년 제 1기로서 마을 주민과 지역 사업 전개 시기이고, 2003년-2006년 제 2기로서 국제결혼 가정이 대거 나타나 다문화 운동을 본격화 하던 시기이고, 2007년-2010년 까지 제3기로서 다문화 동아리 운동을 전개하는 시기이다. 향후 국경없는 마을 운동은 다문화 체험 학습과 교육 및 훈련에 보다 중점을 두어 나갈 예정이다.
[안산시 이주민 현황 참고자료, 2009]
1) 유형별․성별 현황
(1) 한국 국적 미 취득자 : 34,151명
|
전체 계 |
이주노동자 |
결혼이민자 | ||||||||||||||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
|
34,151 |
19,995 |
14,156 |
27,018 |
17,683 |
9,335 |
3,997 |
678 |
3,319 | ||||||||
|
유학생 |
제외동포 |
기타외국인 | ||||||||||||||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
|
255 |
163 |
92 |
253 |
124 |
129 |
2,628 |
1,347 |
1,281 | ||||||||
(2) 한국국적 취득 자 : 4,399명
|
계 |
혼인귀화자 |
기타사유 국적취득자 | ||||||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
4,399 |
1,232 |
3,167 |
1,907 |
153 |
1,754 |
2,492 |
1,079 |
1,413 |
(3) 이주민 자녀 : 3,237명
|
계 |
외국인부모(A) |
외국인-한국인부모(B) |
한국인부모(C) | ||||||||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계 |
남 |
여 |
|
3,237 |
1,640 |
1,597 |
317 |
157 |
160 |
2,733 |
1,386 |
1,347 |
187 |
97 |
90 |
2) 국적별 현황
(1) 한국국적 미취득자(총괄 34,151명)
|
합계 |
동북아 | |||||||||||||||||
|
합계 |
남 |
여 |
소계 |
중국 |
조선족 |
대만 |
일본 |
몽골 | ||||||||||
|
34,151 |
19,995 (58%) |
14,156 (42%) |
24,680 |
3,688 |
20,178 |
75 |
159 |
580 | ||||||||||
|
동남아 |
남부아 |
중앙아 |
미국 |
러시아 |
기타 | |||||||||||||
|
소계 |
베트남 |
필리핀 |
태국 |
인니 |
기타 | |||||||||||||
|
5,636 |
2,063 |
1,406 |
573 |
1,388 |
206 |
1,570 |
792 |
346 |
758 |
369 | ||||||||
① 외국인근로자 : 27,018명
|
합계 |
동북아 | |||||||||||||||||
|
계 |
남 |
여 |
소계 |
중국 |
조선족 |
대만 |
일본 |
몽골 | ||||||||||
|
27,018 |
17,683 (65%) |
9,335 (35%) |
19,249 |
1,071 |
17,764 |
1 |
8 |
405 | ||||||||||
|
동남아 |
남부아 |
중앙아 |
미국 |
러시아 |
기타 | |||||||||||||
|
소계 |
베트남 |
필리핀 |
태국 |
인니 |
기타 | |||||||||||||
|
4,950 |
1,627 |
1,286 |
518 |
1,355 |
164 |
1,231 |
699 |
121 |
639 |
129 | ||||||||
② 결혼이민자 : 3,997명
|
합계 |
동북아 | |||||||||||||||||
|
계 |
남 |
여 |
소계 |
중국 |
조선족 |
대만 |
일본 |
몽골 | ||||||||||
|
3,997 |
678 (17%) |
3,319 (83%) |
3,218 |
1,811 |
1,284 |
4 |
58 |
61 | ||||||||||
|
동남아 |
남부아 |
중앙아 |
미국 |
러시아 |
기타 | |||||||||||||
|
소계 |
베트남 |
필리핀 |
태국 |
인니 |
기타 | |||||||||||||
|
574 |
405 |
87 |
30 |
20 |
32 |
67 |
52 |
8 |
47 |
31 | ||||||||
(2) 한국국적 취득 자(총괄 4,399명)
|
합계 |
동북아 | |||||||||||||||||
|
합계 |
남 |
여 |
소계 |
중국 |
조선족 |
대만 |
일본 |
몽골 | ||||||||||
|
4,399 |
1,232 (28%) |
3,167 (72%) |
4,110 |
237 |
3,843 |
12 |
10 |
8 | ||||||||||
|
동남아 |
남부아 |
중앙아 |
미국 |
러시아 |
기타 | |||||||||||||
|
소계 |
베트남 |
필리핀 |
태국 |
인니 |
기타 | |||||||||||||
|
161 |
68 |
83 |
3 |
4 |
3 |
29 |
12 |
4 |
79 |
4 | ||||||||
(3) 이주 자녀(총괄 3,237명)
|
구분 (연령) |
합계 |
동북아 | |||||||||||||||
|
소계 |
중국 |
조 선 족 |
대만 |
일본 |
몽골 | ||||||||||||
|
계 |
3,237 |
2,419 |
1,938 |
333 |
12 |
89 |
47 | ||||||||||
|
만0~6세 |
1,711 |
1,184 |
953 |
161 |
6 |
31 |
33 | ||||||||||
|
7~12세 |
1,008 |
813 |
690 |
65 |
5 |
44 |
9 | ||||||||||
|
13~15세 |
271 |
218 |
164 |
41 |
0 |
11 |
2 | ||||||||||
|
16~18세 |
247 |
204 |
131 |
66 |
1 |
3 |
3 | ||||||||||
|
동남아 |
남부아 |
중앙아 |
미국 |
러시아 |
기타 | ||||||||||||
|
소계 |
베트남 |
필리핀 |
태국 |
인니 |
기타 | ||||||||||||
|
606 |
356 |
166 |
28 |
26 |
30 |
78 |
52 |
5 |
47 |
30 | |||||||
|
429 |
273 |
97 |
18 |
18 |
23 |
36 |
26 |
3 |
23 |
10 | |||||||
|
129 |
42 |
65 |
8 |
7 |
7 |
25 |
16 |
1 |
11 |
13 | |||||||
|
24 |
20 |
2 |
1 |
1 |
0 |
11 |
6 |
0 |
9 |
3 | |||||||
|
24 |
21 |
2 |
1 |
0 |
0 |
6 |
4 |
1 |
4 |
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