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응 목사 칼럼
다문화 창조주의 철학과 영성
박천응 (안산이주민센터 대표)
⌜다문화 교육의 탄생⌟이라는 책이 출간 되자 반응들이 매우 높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을 쓰기까지 자료나 시간 부족 등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아직 ⌜다문화 교육의 탄생⌟은 부족한 점이 많다. 다문화 현장에서 20년 동안 일해 왔다는 장점은 있으나 이론전개에 있어서 학문적 결함과 모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문화 교육의 탄생⌟은 여러 고민을 하면서 '더불어 행복한 다문화 사회 형성' 이라는 사명감으로 쓰여진 책이다. ⌜다문화 교육의 탄생⌟에서 이야기 하는 다문화 창조주의 철학은 무엇인가 ? 다문화 창조주의안에는 자아실현과 행복추구로 이어지는 자아성찰적 영성이 다문화 창조주의 철학 그 안에 녹아져 있다.
1. 자아 성찰로서 영성
인간은 누구나 자아실현 욕구와 행복추구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자아실현과 행복의 추구의 기초는 자아성찰이다. 자아 성찰을 통해 각성 된 사람은 마지막에 자신과 이웃, 세상이 사랑으로 깊이 연결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곧 자아실현과 행복추구의 통로가 된다. 자아 성찰방법에는 세 가지가잇다. 첫째는 있는 그대로 보기, 둘째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셋째는 마음 대로 살기이다.
첫째로 ‘있는 그대로 보기’는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깨달음이다. ‘있는 그대로 보기’는 자신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있는 그대로 보기’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하여 호흡법, 명상법 등을 도입한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며 내면으로 들어가도록 돕는다. 깊은 명상은 자신과 이웃 세상을 근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혹은 기도의 방법은 자아에 대하여 신적 혹은 영적인 조명을 받기도 한다. 자아와 우주와 합일이든 신의 뜻에 자신의 몸을 싣고 살아가든 자아 본질에 대한 각성은 영성의 기초이다.
둘째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자아 실재에 대한 인정이다. 자아 실재에 대한 인정은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새로운 만남을 주선 하다. 관계적 만남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주기’이자 ‘접촉’이다. 즉 만져주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신적 스킨십이자 접촉이다. 상처 난 마음도 만져주고, 못난 자아도 격려해 준다. 칭찬은 잘할 때만 하는 것이지만 격려는 못했을 때도 긍정의 힘을 더해 주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스킨십은 자아에 대한 자존감도 크게 만들어 간다. 자존감 있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이웃에 대하여 관심과 배려, 마음 나눔 등 아름다운 관계 맺기를 열어 간다. 서로 다른 자아들 간의 만남의 관계는 인간 사회의 행복한 공동체성을 확장 시켜 나간다.
셋째로 ‘마음대로 살기’는 생각대로 살기이다. 마음과 셍각은 모두 같은 근원이다. 마음대로 살기는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타인에게 아픔과 상처는 주고 고통을 안겨다 주는 것은 ‘진실한 마음’대로 살기가 아니다. 진실한 마음은 자기 본질에 대하여 깊은 성찰에서 나오며, 긍정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들이다. 이러한 징정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들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상상하며 꿈꾸게 만든다. 그러한 행복한 세상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자신의 일생을 그 일에 헌신하며 살아가게 된다.
2. 다문화 철학의 영성
자아 성찰 법을 통한 다문화 철학 형성 방법은 무엇일까? 자아 성찰법은 ‘있는 그대로 보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마음대로 살기’이다. 이러한 자아 성찰의 방법이 다문화 를 바라보는 눈을 제공한다. 다문화는 ‘다양성, 관계성, 창조성’ 이 세 가지로 모든 것을 설명해 낼 수 있다. 다문화 창조주의는 자아 성찰 법과 다문화 이해의 세 기둥인 다양성, 관계성, 창조성과 융합 되면서 다문화 철학의 기초를 만들어 낸다. 다문화 철학을 형성해 나가려면 ‘다문화는 이것이다.’는 정답은 없다는 전제에서 자유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첫째는 ‘다양성’으로서 개인과 집단의 다름과 차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이다. 개인과 사회가 형성한 문화의 본질에 때한 깨달음이다. ‘다문화는 무엇이며, 왜 다문화가 있으며, 다문화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다문화의 명상은 개인과 사회를 구성하는 다름과 차이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다름과 차이 자체를 깊이 명상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다름과 차이의 다양성에 대한 명상과 성찰은 묻고 대답하기로 나타난다. 다름과 차이의 다양성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고 대답한다. 자기가 보지 못하는 다름과 차이에 대하여 여러 이웃에게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성 자체에 대한 본질을 각성해 나가게 된다. 이 묻고 대답하는 연단의 과정에서 ‘다양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규정과 개념에 녹아있는 자기 철학이 형성 된다.
둘째는 다름과 차이의 다양성에 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는 자아간 문화간 새로운 ‘관계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다양성에 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는 다름과 차이를 가진 자아들과 문화들의 다양한 접촉을 형성한다. 상처 난 소수자 문화를 만져주고, 배타적 자기 문화에 대한 반성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접촉들은 문화 간 격려가 되고 소수자 문화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자존감을 고조시킨다. 다름과 차이의 문화적 주체성과 자존감은 문화간 갈등의 관계를 협동의 관계로 변화시켜 나간다.
셋째는 ‘마음대로 살기’는 생각대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조성’의 실천이다. 문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문화를 인간의 삶의 총체라 한다면, 인간의 미래적 삶도 예정되거나 정형화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 가능하다. 인간 문화는 자아실현과 행복추구를 향한 욕구를 충복하기 위하여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발전해 나간다. 즉, 인간의 미래는 예측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과정이다. 문화 창조 행위는 때로 가치적 측면, 윤리적 측면 등에서 부정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인간의 자아실현과 행복추구의 본질의 통로인 사랑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깨달음이 이루어지면 부정성은 줄어들고 긍정성이 다문화 창조행위의 중심을 잡아 나가게 된다.
3. 다문화 추구의 영성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다문화의 추구는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자신의 좋은 생각은 미래 행동의 출발이 된다. 좋은 생각이란 곧 자기 자신의 영혼과 마음의 상태 즉 영성을 가리킨다. 영성이 있는 다문화는 미래 사회와 미래 행동의 열쇄이다. 영성이 있는 다문화는 자아실현과 행복추구에 근원이 있다. 영성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없는 영성의 자아실현과 행복추구는 미래를 어둡게 만들 뿐이다.
이제 다시 다문화를 생각하며 자아 성찰적 질문을 해보자. ‘다문화를 추구하는 나는 어떤 다문화적 영혼과 마음이 있는가? 다문화를 추구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다문화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를 점검해보자. 다문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새 날’을 여는 사람들이다.
한 스승이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제자에게 물었다.
“언제가 새 날 인가?”
제자는 여러 가지로 대답하였다.
“날이 밝아 오는 것이 새날입니다.”
“임금이 바뀌면 새날 입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지면 새날 입니다?”
눈을 감은 스승은 모든 대답에 침묵만 하였다.
답답한 제자는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언제가 새날 입니까?”
그때 스승은 감았던 눈을 살그머니 뜨면서 대답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형제로 보일 때, 그때가 새 날이네.” 하였다.
다문화는 나와 세상을 새롭게 보고 이웃을 새롭게 만나는 만남의 실천 현장이다. 다름과 차이의 다양성은 나 자신과 이웃, 세상이라는 메마른 대지에 생명을 안겨다 주는 새벽이슬이다. 다양성으로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새롭게 만나도록 돕는다. 새로운 눈으로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도록 돕는 영성이 있는 다문화는 자아실현의 길을 열어주고 행복추구의 넉넉함을 안겨다 주는 열쇄이다. 이것이 다문화 창조주의의 가치이자 철학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누구인가? 다문화는 무엇인가? 다문화를 추구하는 나는 어디로 가는가?’ 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며 명상에 빠져본다. 답은 이미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